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크리스마스 이브.

 

한국 재즈의 대모라 불리우는 박성연 선생님 _  교대 근처 야누스에서 늦은 밤. 오픈식 때 이후 처음 들리는 야누스. 공연이 끝날 즈음 들어가서 인지 연인으로 보이는 몇 테이블 만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마지막 까지 어떤 의미라도 붙여보고 싶은 나와는 달리 지극히 솔직한 친구의 표정에선 실망의 기운이 느껴졌지만 그것 또한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 조촐하게 한잔 했던 우리의 모습과 닮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무튼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붙여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작은 요소라도 끌어내야만 했다.. 그렇지만 박성연 선생님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건 크리스마스의 악몽에 비유하고 싶을 만큼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 연주와 분위기에 지나는 시간 앞에 초조해지기까지 하였다. 즉흥적이긴 했지만 이곳을 제안한 사람이 본인이 었기 때문 이었을까. 알수가 없다.  잠시후 박성연 선생님께서 등장.  white Christmas 반주가 흐르고 마이크를 들고 우리 테이블로 다가오신다. 혹시나..아니 역시나였다. 앞으로 나오셔서 한곡 부르라고 주시는데 조금 당황 하기도 했지만 이럴 때 가사를 외워뒀으면 하는 아쉬움이 또 남는다. 노래방에 익숙한 80년대생 본인에겐 암기하고 있는 가사는 회식자리를 대비하여 외워둔  18번 '찰랑찰랑'정도이기에 이런 순간 나는 두손을 들어 양해를 구할 수 밖에 _ 기가막히게 본토발음을 구사하는 여느 재즈싱어들과 달리 시대를 거슬러  칠팔십년대 딱딱한 영어발음을 구사하며 서정적인 한국의 정서가 반영된 모습으로 지나간 세월이 묻어 있기라도 한 듯한 칼칼하고 낮은 목소리로 부른 My Funny Valentine. 조금 쓸쓸한 듯하지만 이런날 거리낌없이 한잔을 해줄 수 있는 친구와 조용한 재즈바에서 한국 재즈의 대모라 불리우는 분의 My Funny Valentine 을 들을수 있다는 것도 나쁘지 않아.

 

너와 나의 시각.

  

 

루돌프와 산타를 발견한 이상 우린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쳐야 한다. 이미 지난 크리스마스 이지만 다가올 크리스마스 이기도 하다. 다만 지난 시간이 앞으로 다가올 시간보다 조금 가까운 것 뿐 루돌프와 산타를 발견한 이상 그것은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킨다. 그날이 크리스마스이건 아니건 크리스마스 이전이건 아니건 간에 말장난 같은 사실은 루돌프와 산타 인형과 크리스마스와의 관계이다. 지금 내가 거주하는 지역과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한 친구와 가끔 주말 나들이를 하다 보면 매번 같은 지역 습관적으로 발걸음이 향하는 카페 테라스. 그 곳 한 구석은 이미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우릴 기다리고 있다.흐르는 시간으로 외적으로 혹은 내적으로 변하는 우리들에게 핸드 드립 커피 한잔 만이 변하지 않고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일까 .발길이 멈추는 곳은 그집 앞이다. 가끔은 유쾌한 수다가 이루어 진다. 지난 이야기, 현재 이야기, 매번 비슷한 흐름으로 이야기는 진행되지만 어제의 대화와는 사뭇 다른 무언가 스며있는 듯한 향이 입을 통해 흘러 나오기 시작하고 조금 지루해 진다 싶을 땐 어김 없이 주변에 누군가 어떻고 이건 어떻고 뒷좌석에 배우라도 보이는 날엔 왠 횡재인가 싶어 촌스럽게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같은 자리에서 아메리카노 한잔과 모카커피 한잔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더없이 달달한 치즈케잌 한조각. 몇 일 앞둔 크리스마스가 보란 듯이 조금 허술한 트리와 장식품들이 곳곳에 장식되어 있다. 우린 별다른 뜻 없이 매번 앉던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지극히 보편적인 20십대 여성들과 다르지 않게 가지고 있던 카메라를 만지작 거려본다. 그순간 서로는 어떤 예술가보다 멋진 발견을 시작하고 깔깔되며 칭찬하기에 바쁘다.그러다 어느순간 우연하게 멋진 발견을 하게되면 암울한 천재들의 발견도 부럽지 않게 역사에 남을 순간이라는 깜찍한 발상을 하며 잔을 들어 커피 한모금을 마신다. 아아 이것이 왠 발견인가 _ 이것은 루돌프와 산타를 바라보는 너와 나의 시각이라 칭한다.  

2009년 12월 27일 일요일

2009년 12월 23일 수요일

커피와 담배

때때로 인생은 단지 커피 한 잔의 문제 또는 커피 한 잔이 가능케 해 주는 친밀감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이런식의 문장을 썼다고 하지. 그리고 잠시 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가 떠오른다. 흑백의 옴니버스 영상이 돌아가고 어딘가에 앉아 커피와 담배를 나누며 한가한 듯 소소하고 색다른 유머들을 내뱉는 사람들. 가끔 그런식의 색다른 유머는 피식 웃게 해주며 복잡하게 얽힌 삶이라는 무게를 짊어진 누군가에게 보란듯이 메고있던 짐을 내려놓고 그자리에서 커피한잔과 담배한대를 나누며 비아냥 거리는 듯 하다.

 

짐 자무시에게 지루한 일상 속에 던져진 소소하고 색다른 유머로 쓰여진 커피와 담배 이야기는 동시대에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의미로 그려지기도 하고 쉽게 정의를 내리기 모호한 상황까지 연출되기도 한다. 무튼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미를 커피와 담배에 붙여보기도 하며 그것은 또 누군가에겐 공감의 형태로 읽혀지기도 한다. 그런식의 말을 이어가다보면 그속엔 이야기라는 보편적인 공통점이 발견된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그려진 작은 조각들은 어떠한 소재를 통해 혹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이런식의 또다른 이야기로 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던 한 남자에게 죽기전까지 놓지 못했던 담배가 있었으며 밤새 연구실에서 컴퓨터와 눈을 마주하며 어떻게든 소통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연구원들에겐 자판기 커피가 있었다. 어렵게 금연한 한 여자의 애인이 떠난 후 다시 담배를 물기 시작하는 것 또한 이젠 식상한 시트콤 정도랄까. 한쪽 세상은 금연 캠페인을 하고 한쪽 세상은 담배를 생산하고 있으며 매일 금연 운동을 접하는 한 남자는 건강을 헤치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금연을 결심만 한다. 이젠 카페인을 섭취하고 또 섭취해도 잠만 잘온다는 연구원과 이젠 얼마 남지 않은 삶보다 담배 한대를 피우기를 선택한 한 남자 이야기는 어쩌면 너무 흔해서 가십거리도 안될 턱이다.커피와 담배에 중독되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자기 합리화에 패배주의자들이란 꼬리표를 달겠지만 동전의 앞면 또한 뒷면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고 어쩌면 동전의 앞뒷면 보다 좀더 쉽지 않은 것이라는 점에서 어제의 커피와 담배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

 

짐 자무시는 커피와 담배를 그려냈고 정말 보는 내내 커피와 담배가 나온다. 한번쯤은 나도 커피와 담배를 언급해보고 싶었다.    

 

2009년 12월 19일 토요일

스쳐지나가기

 

스쳐지나가기 _ 잠시 멈추고 싶은 어느날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하품을 한것도 아닌데 눈에서 자꾸 눈물이 나온다. 잠시 스쳐지나가는 것 뿐인데 그곳에 멈춰 머무르고 싶다고 마음속에서 소리없이 외치고 있지만 순간은 잡음과 동시에 이미 순간이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스쳐지나간다. 그런데 자꾸 낮설지가 않고 익숙한 장면들이 또다시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하품을 한것도 아닌데 눈에서 자꾸 눈물이 나온다. 이것도 습관이라 같은 장소를 스쳐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스쳐지나가기를 몇회 반복하다보면 이미 그곳은 가끔 머무는 곳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끝이 아닌 것처럼 내일 다시 마주할 수 있을 것처럼 ...그러나 이미 어제스첬던 그곳은 없다.

 

자정을 훌쩍 넘기어 Charlie Haden 의  El Ciego (The Blind) 를 반복해서 듣는 짓은 멈추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당분간 필요할 것 같다. 당분간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며 예상컨데 그것은 적당히 긴 당분간이 될 것이다.  

 

'나는 자유다. ' 이문장 뒤엔 지독한 고독함이 동전의 양면처럼 기대어 있는지 알아버린 것일까 _ 알을 깨고 나온 새는 길을 잃었다. 새장 속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사실 새장 속에 사는 법을 알지 못한다. 창공을 자유롭게 나는 보헤미안 어쩌면 지독히도 새장을 갈망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번 날아버린 새는 어디로든 날아가야 하는 운명이 되어버린 것을.. 보헤미안 새를 사랑한다면 새장 너는 창공이 되어야 한다.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언제 용기를 내야 하는지 흐르는 시간으로도 찾을 수 없고 다가오는 문제들에 끊임 없이 쏟아내리는 질문에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

2009년 12월 13일 일요일

겨울하늘

 

2009.

winter sky.

 

정직한 하늘색 .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그리고 그 사이 둥둥 떠있는 구름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겨울에 정직한 색으로 보이지만 지루하지 않다. 반복됨이 사소한 일상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던 나의 어린날 .17살의 여고생과 마주한다.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보는 하늘과 그곳을 벗어나 보던 하늘은 같은 정직한 하늘색 이었지만 생각과 눈 그리고 하늘 사이로 세상이 만들어 준 색안경이 준 혼란 그것은 훌쩍 커버린 나에게 정직한 하늘색이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아도 나의 하늘은 항상 그곳에 있어서 다행이다.

 

first snow

2009.

first snow

 

아직도 첫눈이 오면 투덜 되지만 눈은 별로라고 입을 삐죽거리며 무관심 한 척 하다가도 눈이 왔다고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어 포토메일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라. 올해의 첫눈이 전에 왔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 목격한 그것에 첫눈이란 타이틀을 붙인다. 초록 가늘고 뾰족한 잎 사이로 금새 쌓인 눈송이가 조금전까지 컴퓨터 모니터와 장비 옆에서 냉정을 반복하며 판단하고 있던 나에게 잠시 휴식을 준다. 달달한 코코아 혹은 유자차 머그컵에 담아 첫눈을 맘껏 느끼고 싶었는데 인스턴트 커피 한잔으로 그해 겨울을 기억해본다. 너무 선명해 사실적이지 않은 사진 처럼 나의 기억도 선명하면 좋으련만 아무리 눈을 감아도 흩어진 조각들에 번진 그 모습들이 내것이었나 싶어 눈을 뜬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선명한 초록잎과 그위에 쌓인 눈꽃들이다. 잠시후 햇살이 들면 녹아질 그것들은 꼭 기억속의 조각을 닮았다.